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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31

6시간 걸어 맛본 함안읍성 장터국밥 밥 때가 되면 뭘 먹을지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할 정도로 식탐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6시간을 걷고 난 뒤에 맛있는 밥집을 만나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6시간을 걸어 밥을 먹었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동행 모임을 하고 있다. 파발마가 달렸던 역참과 역참을 잇는 길을 찾아 걷는 모임으로, 봄에는 한 달에 두 번, 날이 좀 더워지면 한 달에 한 번 진행한다. 시작한 것은 좀 되었지만 난 이제 세 번 참가하였다. 지난 일요일(3월 28일)에는 마산 석전의 근주역에서 함안 파수역을 잇는 길을 걸었다. 이번 한참은 두 번에 나누어 걸었다. 창원읍성에서 출발 한 터라 지난 14일 근주역을 지나 산인 신당고개에서 멈추었었다. 그리고 이번엔 신당고개를.. 2010. 3. 31.
주변의 기발함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 주말 전국을 황사가 덮쳤습니다. 정말 짜증 나는 주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짜증 내지는 마세요. 요즘 사람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갑니다. 고개 들어 하늘 한번 제대로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니 말입니다. 정작 일과 삶이 바빠서라기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 한 번 쳐다보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자동차를 버리고, 스쿠터를 이동 수단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다 요즘은 자주 스쿠터를 두고 걷거나 버스를 탑니다. 아직은 버스 노선에 익숙하지 않아 가끔은 버스를 잘 못 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마음을 바꾸니 그렇게 짜증 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번 걷기모임에 참여합니다. 이제 두 번 참여 하였.. 2010. 3. 21.
역사와 소통하며 나를 찾아 옛길을 걷는다 언제부터 잃어버린, 걷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2Km가 넘는 촌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작은 동산을 넘어야 했고, 다리를 건너는 길이었다. 신작로도 있었지만, 길의 반은 산으로 난 길이었다. 창원이 개발되며 새로운 주택지로 옮기게 되었고, 걸어 5분 거리에 학교가 생겼다. 이때부터 걷는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자전거와 버스로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3년은 콩시루 같은 만원버스에 매달려 학교에 다녔다. 그나마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대중교통이 불편했던 창원을 쏘다니는 것을 즐겼다. 그때는 하루 몇 시간 걷는 것은 아주 익숙했고 걷는 것이 생활 일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차를 가지고부터 걷는 것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역은 지.. 2010. 3. 14.
설흘산-고둥닮아 고둥산, 구름낀다 구름산 2월 말 남해로 일하는 동료와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수련회 둘째 날 응봉산과 설흘산 산행을 하고 그 이야기를 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보물섬 남해의 봄은 마늘밭에서 시작한다] 블로그에 올린 이 글을 보고 남해가 고향인 후배가(후배라고 하지만 불혹을 넘겼습니다.) 기분 나쁘다며 댓글을 남겼습니다. "산이름은 대체 누가 짓는거야? 옛날 나와 친구들, 윗대의 어른들은 모두 구름산(비가올려고 하거나 오거나하면 그 봉우리 주위에 구름이 휘감아 도는 지라...)이라 지칭했었는데..., 뒷산은 고둥같이 생겼다고 고둥산 이렇게 부르고.... 옛 이름은 간데없고 설흘산은 대체 어디서 온거야 기분나쁘게 ㅉㅉㅉ" 후배의 댓글을 보고 든 생각이, 그래 그곳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추억이 깃든 사람들에게는.. 2010. 3. 5.
정병산 우곡사-절에서 말싸움 나니, 절도 결국 속세더라 지난주 일요일은 날이 좋았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창원 향교에서 옛날 자여역이 있던 자여까지 10여 키로미터를 걷는 걷기모임 '동행'의 공식적인 첫 일정이 시작 되는 날이기도 했다. 휴일 날 이른 출발이라 일어날 자신도 없고, 몸 상태가 그 거리를 걷기에는 영 아닌 것 같아 참석을 하지 않았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일행들에게 어디쯤인가 별일은 없는가 문자를 넣었다. '덕산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있다면서, 오시게요' 하는 문자가 날아왔다. 일행에는 아이들도 있었고, 차도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사히 도착했다니 안심이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나가 여름동안 벗어 놓았던 부츠를 신고 14번 국도를 달려 자여마을로 향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이후로 이 길을 자주 다니.. 2009. 10. 17.
지리산둘레길 걸으며 무슨 생각하나요? 짧은 시간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그 시간에 넘치는 글을 올렸다. 그러고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았으니 말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마무리 할 것은 해야겠다. 둘레길에서 만난 풍경과 생명,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언제가는 희미해 질 나의 기록이고 우리 기록이기 때문이다. 2009/08/02 - [삶! 때론 낯선] - 지리산 마천 옻닭으로 몸안에 옻칠하고.. 2009/08/04 - [삶! 때론 낯선] - 동구마천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서암정사 가는길 2009/09/12 - [삶! 때론 낯선] - 부속암자가 더 유명해진 서암정사 2009/09/15 - [삶! 때론 낯선] - 변강쇠는 벽송사 장승을 불태웠을까? 2009/09/16 - [삶! 때론 낯선] .. 2009. 9. 17.
벽송사 미인송 허리 꺽인 사연 아세요? 지리산 벽송사에 가면 잘생긴 두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대웅전 위쪽 공터엔 1000년 묵은 소나무가 자라는데 도인송(道人松)이다. 나이에 걸맞은 굵고 반듯한 줄기에 잎들은 원뿔 모양으로 뭉쳤다.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심었고 그게 소나무로 승화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그는 500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공언하고 열반했다. 귀환한 시기는 아마도 1520년 무렵일 것이며 도를 깨친 벽송지엄 선사가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하는 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이 구부러진 미인송(美人松)은 환성지안 선사의 죽음과 사랑이 서린 나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구부러졌다. 마치 미인송이 도인송을 보호하는 형국인데 넘어질 듯 하면서도 도인송이 비를 맞을까 불볕에 탈날까 감싸고 있는 듯하다. 부용낭자는 남몰래 스님을 연모하.. 2009. 9. 16.
변강쇠는 벽송사 장승을 불태웠을까? 함양 마천면에 있는 벽송사(碧松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경상남도 전통사찰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사적기가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벽송사 문화재로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벽송사 삼층석탑과 일제강점기에 만든 목장승 2기가 전하는데, 벽송사 목장승에는 가루지기타령에 나오는 변강쇠가 불태운 목장승과 연관 짓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관심을 받는다. 벽송사 목장승(碧松寺木長丞)은 1974년 12월 24일 경상남도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각기 4m이다. 대체로 잘 남아 있는 오른쪽 장승의 몸통에는 ‘호법대신(護法大神; 불법을 지키는 신)’이라는 이름을 새겨 놓았다. 머리의 일부가 1969년.. 2009. 9. 15.
부속암자가 더 유명해진 서암정사 7월 말에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오고 글 두 편을 올리고 미루어 두었다 다시 사진을 정리한다. 2009/08/04 - [삶! 때론 낯선] - 동구마천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서암정사 가는길 2009/08/02 - [삶! 때론 낯선] - 지리산 마천 옻닭으로 몸안에 옻칠하고.. 벽송사 부속암자의 화련한 변신 서암정사 그리고 서암정사의 화려함에 사람들이 벽송사보다 서암정사를 더 즐겨 찾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분은 이런 현상에 대해서 조금은 못마당한 듯 했다. 서암정사에 대한 자세한 내력을 알지 못하고, 세심하게 둘러보지 못한 때문인지 나도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이 없다.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바위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보편적으로 보는 절과 차별화 된 전반적인 절풍경 정도이다.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 2009.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