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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31

20130421(일)-청량산 산행 No산악회에서 청량산산행을 하다.높지않은 산이지만 등산이 힘들었다.등산 후에 어시장에서 회로 뒷풀이... 영화 노리개 보았다. 2013. 4. 21.
20130413(토)-장복산 산행 전날의 피로로 망설이다. 내가 장소 제안자라 늦게라도 출발하여장복산을 거닐었다.눈으로 40년 넘게 보고 지낸 산을오늘에야 올라 거닐었다.뜻 깊은 날이다.많은 야생화를 만났다. 연애의 온도 영화를 보았다.별시리 감흥이 없는 영화.. 2013. 4. 13.
20130330(토)-지리산 천왕봉 교육원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을 올랐다.26년만에 천왕봉을 다시 밟았다. 돌아 오는 길 군항제로 고속도로가 막힌다.코스를 바꾸어 도청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짐을 풀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온천물에 몸이라도 담궜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2013. 3. 30.
20130317(일)-무학산 산행 No산악해 무학산 산행, 무학산 정상을 처음으로 밟았다.산행 끝나고 사림동에서 회 한접시..집에 갈 때는 봄비가 내린다.스쿠터 타고 나왔는데.. 2013. 3. 17.
가덕도 갈맷길 진달래가 피었다. 따뜻한 봄기운을 느끼며 부산 가덕도 갈맷길을 걸었다.앞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에 눈이 호사를 누렸다. 2013년 따끈따끈한 봄꽃 감상하세요. 동백꽃 지는 가슴 - 김산 내 걸어온 길 사랑 아닌 적 있었던가 겨울 남풍에 실려 온 동백꽃 내음을 따라 내 걸어갈 길 사랑 없이 갈 수 있으랴 기차는 기찻길을 밟으며 지나가는데 내 사랑도 없이 사랑의 길 갈 수 있으랴 밤에 쓴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처럼 한낮의 골목길을 서성이는 사랑이여 기찻길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붉은 동백꽃 지는 가슴을 남으로 난 기찻길 위에 올려두고 싶었네 - 안상학 시집 중 '겨울 남풍' 전문 - 가사 출처 : Daum뮤직 봄을 느끼며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진 가덕도 갈맷길 절반 정도인 11.64Km를 걸었다.힘들었지만 봄꽃이 반겨.. 2013. 3. 10.
20130302(토)-정병산 산행 NO산악회에서 정병산 산행을 했다. 모처럼 땀을 흘리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저녁에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영화를 보았다.어려운 영화다. 2013. 3. 2.
사람에 대한 믿음 간직한 공곶이노부부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는 CCTV, 도로 위의 단속카메라, 인도 위 장애인 점자블록 옆에 세워진 볼라드와 각종 경고문 사람 사는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신에 대한 흔적을 심심찮게 생활에서 확인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무감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신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요일 '경남의 길, 소셜미디어를 만나다.'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거제 공곶이를 방문하였습니다. 공곶이는 봄이면 노랗게 물드는 수만 그루의 수선화와 수만 그루의 종려나무숲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수십 년간 노부부가 조용히 일군 곳입니다. 2007년에도 찾았으니 두 번째 방문입니다. 사람 손을 타서 그랬는지, 자연이 그랬는지 노부부의 땀으로 쌓았을 돌담의 일부분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 2011. 5. 30.
1500년 시간여행 창원 천주산 두리길 걷기 웰빙 바람과 함께 걷는 것이 유행이다. 그리고 제주 올레길이 유명해지니 지자체도 앞다투어 길을 내고 있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지 판단이 되질 않는다. 건강을 위해 길을 걷는 것 좋은 일이다. 그런데 현대인이 시간을 따로 내어 걷기를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비극이다. 건강이 아닌 다른 이유로 길을 걷는다 하면 다르지만 말이다. 지난 토요일 천주산 기슭을 걷는 두리길 모임에 참여하였다. 길을 걷다 만난 토기 조각 하나로 15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랐다. 선인들이 걸었던 길에는 이렇게 고스란히 역사가 어려 있고 귀를 열고 길을 걸으면 그 역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는 창원시 평생학습 우수프로그램 지원사업으로 두리길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삶터 주변에서 새 길이 아니라 .. 2010. 10. 27.
처녀 총각 혼사가 오가던 시골 5일장 시골 장날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일이 도모되는 공동체 중심지였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가 유통되는 곳이 장이었다. 농업 중심 사회에서 생활 근거지를 벗어나는 일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마을과 마을의 소식을 교환하는 것이 장날이었고, 외부의 소식을 전하는 일은 이곳저곳을 다니는 장사치들 몫이었다. 또한, 장날에는 인근 마을 사람이 만나 처녀 총각의 혼사도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시장이나 마트와 다르게 우리의 전통 장날은 공동체 소통의 중심지로서 역할이 있었다. 6월 13일 동행의 첫 출발지가 함안 칠원읍성이 이었다. 함안 칠원장은 3일과 8일에 서는 5일장이다. 그렇게 활력 넘치지는 않았지만, 도시의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사람 사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팔.. 2010.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