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발로/길걷기

6시간 걸어 맛본 함안읍성 장터국밥

by 구르다 2010. 3. 31.
밥 때가 되면 뭘 먹을지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 할 정도로 식탐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6시간을 걷고 난 뒤에 맛있는 밥집을 만나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6시간을 걸어 밥을 먹었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동행 모임을 하고 있다. 파발마가 달렸던 역참과 역참을 잇는 길을 찾아 걷는 모임으로, 봄에는 한 달에 두 번, 날이 좀 더워지면 한 달에 한 번 진행한다.
시작한 것은 좀 되었지만 난 이제 세 번 참가하였다.

지난 일요일(3월 28일)에는 마산 석전의 근주역에서 함안 파수역을 잇는 길을 걸었다. 이번 한참은 두 번에 나누어 걸었다. 창원읍성에서 출발 한 터라 지난 14일 근주역을 지나 산인 신당고개에서 멈추었었다. 그리고 이번엔 신당고개를 출발하여 파주역까지 걸었다.

※ 한참 :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오랫동안 이라는뜻의 한참이라는 말은 역참과 역참 사이 거리를 이르는 말이다. 즉 한 개의 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된 말이다. 한참은 보통 30리이며, 관에서 운영한 옛날 여관인 원과 원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이번 동행 길에는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생방송 전국시대 취재팀이 함께하여 동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했다.
도시를 관통한 지난 모임 때문인지 아니면 취재팀이 함께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지난번에 참여했던 사람 중 여섯 명이 불참이다. 대신 새로운 사람이 함께했다.

1차 집결을 고려시대 대로의 유적이 있는 내서 농협 하나로 마트 앞에서 하였다.


△ 2010.3.28.09:00, 내서 농협하나로마트 앞에서 출발 전 찰칵



그리고 다시 차로 이동하여 지난 종착지였던 산인자동차운전학원 가는 길인 신당고개에 2차 집결하였다.
카메라가 있으니 출발도 복잡하다. 일단 카메라를 들이대면 굳어버린다. 그리고 이런저런 요구도 많다.
취재팀은 동행 참가자들을 카메라에 담고, 난 그런 취재팀을 카메라에 담았다.

△ 2010.3.28.09:40. 신당고개에서 출발에 앞서 취재



출발은 어려웠지만 길을 걷는 동안 취재팀은 자연스럽게 취재를 한다. 동행에 참여한 사람들도 취재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걸었을까? 고려동이 나왔다.
남해 고속도로를 달리다 항상 차창 밖으로 보기만 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서 있다. 기분이 묘하다.

고려동은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다.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하였다.
600여 년이 지났지만, 자손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고려동에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었다.

△ 봄이 오는 고려동



취재팀에게는 좋은 방송거리다.
동행의 안내자인 최헌섭 박사는 이날 설명을 두 번씩 하였다.
한 번은 동행팀에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해설을 하고나면, 리포트가 질문하고 방송용 설명을 또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방송 취재팀과 함께하는 것이 나는 내심 즐겁다.
작년까지는 동행이 연구소 자체의 자유로운 사업이었지만, 올해 동행은 지역사회문화예술 교육 활성화 지원사업을 받아 진행하기에 홍보는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 2010.3.28.10:28 최헌섭 박사가 고려동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길을 가다 먹는 새참시간이다. 문암슈퍼에서 막걸리도 샀다. 그리고 인심 좋은 슈퍼주인에게 김치도 얻었다. 김치를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고 난리 아닌 난리를 떨었다. 아직 시골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러고 보니 새참, 밤참 할 때의 참도 우리가 걷는 역참을 잇는 길의 역참의 참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도 길을 걷다 이런 시골인심에 대한 인터뷰를 하였는데 방송에 나오려나, 아마 편집 당하지 싶다.



다시 길을 걸어 한 시간, 할미당 고개를 넘고 입곡마을에 도착하였다. 효자각, 정려각 등 함안에는 유독 비석을 모신 각이 많다. 조선시대 유교의 도를 알리는 비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세웠다고 한다. 오늘 옛길은 사라졌지만 이런 비석을 통해 이곳이 옛사람이 다녔던 길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입곡마을 초입에도 성산이공 송덕비를 모신 창선각과 삼우대유허비가 있었다.

배 시계도 점심때가 된 줄 아는지 쪼르륵 한다.
이곳에서 돌아가 유원지에서 점심을 먹고 갈지, 두어 시간 걸어서 점심을 먹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전체적으로 이왕 지나온 것이니 더 가서 먹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지금까지 동행모임에서 점심은 3시나 되어야 먹었다.

이를 놓치지 않고 취재팀에서 긴급제안, 길거리 회의를 방송용으로 다시 하자는 것이다.
잠시 생쇼를 했다. 방송에는 어떻게 나올까?


△ 2010.3.28.11:47 입곡마을 초입



멀쩡한 길을 두고 논 한가운데로 갔다.
나무 한 그루와 돌비석 하나가 서 있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선돌이다.
예전에는 이곳이 길이었는데 새로 도로가 나면서 논의 중간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최헌섭 박사는 관리되지 않고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유적을 보고 안타까워 했다.

취재를 해야 하는데, 리포터가 마이크를 입곡버스정류장에 흘리고 왔다. 그래도 다행이지 한참을 더가서 취재거리가 생겼으면 고생 고생 그런 고생도 없을 것인데...

함안에는 3개 정도의 선돌이 있는데 입곡마을의 선돌이 그래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입곡마을 선돌



또 한 시간을 걸었다. 죽현고개에 도착하였다. 지금은 큰 도로를 낸다고 고개를 싹둑 잘라 옛 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차가 다니기 좋도록 길을 내었으니 이곳이 죽현(대밭)고개라는 것을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동행 참가자들이 준비해 간 천에다 죽현(대밭)고개라고 적어 나무에 매달았다.

함안은 그 지형이 비봉형 그러니까 봉황을 닮았다. 봉황은 벽오동(푸른오동) 숲에서 잠을 자고, 대나무 열매를 먹이로 하는 상상의 새다.
죽현고개의 대나무 숲은 그런 봉황을 머물게 하기 위하여 조성한 인공 대밭이다. 또 합안읍성에 벽오동을 심은 것도 같은 뜻이다.


△ 2010.3.28.13:00. 죽현(대밭)고개



죽현고개를 넘자마자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정유재란 당시 함안군수 안옥과 함께 이곳 죽현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창원에서 진주로 진격하던 왜군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이즙을 기리며 기념하는 공원이다.

또 한참을 걸어 대산리 석불에 도착하였다. 옛날에는 이 마을이 앉은 자리 전부가 절터였다. 고려시대 절터로 지금은 석불 몇 기와 짝을 잃어버린 탑신부 일부가 남아있다.
함안의 유일한 보물이다.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무진정이 있는 이수정에 도착했다.
그런데 맛있는 꽃게장 밥집이 일요일이라 쉰다니 허망하다.
두 시가 훌쩍 넘었다.

사람들은 배낭 속에 모셔두었던 더덕막걸리로 풍류를 즐겼고, 술을 못하는 나는 무진정과 이수정의 풍경으로 달랬다.
이수정과 무진정 풍경은 계절에 따라 변한다.
아직 봄이 무르익지 않아 겨울 흔적이 많지만, 여름에 버들이 늘어진 이수정을 생각하면 멋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2010.3.28.14:14 무진정과 이수정



드디어 함안읍성 코 앞이다.
제2호 괴산리 선돌이다. 교통사고로 선돌이 부러졌다.
선돌 건너 편 논에는 괴산리 1호 고인돌이 있다.




2시 53분 드디어 합안읍내 장터에 있는 밥집에 도착했다.
동행모임 점심때는 이제 3시로 굳어지는 것 같다.
'전통한우국밥 대구식당' 간판을 한 집인데 밖에서 보면 허름한 밥집이다.


△ 2010.3.28.14:53. 합안읍 대구식당



내부 역시 깔끔한 집은 아니다. 가게방 벽에는 메주를 매달아 놓았다.
메뉴는 한우와 돼지다.



점심때가 지났음에도 손님이 북적인다.
방안에도, 밖에도 손님들이다.
우리 일행이 들어섰을 때도 손님들이 국밥을 먹고 있었다.
이때가 3시가 지났는데 말이다.




우리 일행은 국밥을 주문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우선 막걸리부터 시켰다.
동행모임은 막걸리 모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찬은 달랑 김치 몇 쪽, 고추, 양파, 된장이 전부다.
매운 것은 질색이라 검증되지 않은 고추는 손도 대지 못하고, 양파를 된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된장 맛이 장난 아니다. 그리고 김치맛도 일단 합격이다.
김치 하나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 난 김치만 입에 맞으면 모든 게 OK다.




국밥만 먹기는 섭섭하다며,  한우불고기는 부담스럽고 돼지불고기를 시켰다.
직화 불고기라 냄새도 좋다.
일단 불고기 맛도 합격이다.

난 취재팀과 한상에 앉았는데 밥집에서도 취재는 계속되었다. 그래서 다른 상과 달리 내가 앉은 상은 깔끔 그 자체다.




불고기를 먹은 때문인지, 국밥 몇 개가 소고기국수로 바뀌었다.
얼른 달려가 사진을 찍었다.
국수를 즐기지 않지만 먹음직 스럽게는 보인다.




드디어 내 앞에도 국밥이 나왔다.
눈으로 먼저 시식을 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젓고 나서 또 카메라에 담았다.
고기와 선지, 콩나물이 들어간 국밥, 일단 외관은 합격이다.

이제 입에 넣어 씹어 보고, 허기진 배를 위로할 차례다.
아니 이미 돼지 불고기로 일단 배는 달래 놓았으니 그렇게 허기진 상태는 아니었다.




일단 이렇게 깔끔하게 비웠다.
박박 긁지는 않았지만, 주인아주머니가 설거지하기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었다.

간단히 평하자면
국물맛이 진국이다. 만약 내가 술을 할 줄 안다면 국물만으로도 술 몇 병은 했지 싶다.
고기도 퍼서 거리지 않고 쫄깃쫄깃 맛이 좋았다.
특히 선지가 퍼석거리지 않았다. 창원에 이름있는 선지국밥집의 선지보다 훨씬 맛있다고 할까?
5천 원 이상의 맛을 가진 밥집이었다.

먹고 나서 왜 이 집에 이렇게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 붐비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6시간을 걸어서 점심을 먹었지만, 6시간이 후회스럽지 않은 밥집이라 생각한다.




후식으로 길을 걸으며 몰래 딴 매화와 목련봉오리로 즉석 차를 만들었다.
매화봉오리는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꽃을 피웠다.



합안읍에 가시는 분들은 전통한우국밥 대구식당을 꼭 들려보세요.
아주 까다롭지 않은 분이면 만족하실 것입니다.




점심을 먹고 마지막 목표지인 파수역을 찾아 길을 재촉한다.

△ 2010.3.28.16:05. 함안면소재지



그렇게 또 한 시간을 걸었다.
파수농공단지 공장을 가로지르니 이렇게 징검다리가 놓였다.
역시 그림이 될 만한 것은 방송제작팀이 놓치지 않는다.




징검다리를 건너 만난 파수의 매화밭...
다들 한참을 걸어서 일까
매화에 코를 박고 매화향에 취한다.




드디어 파수역이 있던 장소로 추정되는 원촌리에 도착 했다.
1차 집결 후 8시간이 걸렸다.

마무리 취재다.
지금까지 동행팀이 방송제작팀을 고생시켰다고, OK할 때 까지 마무리 영상을 담았다.
한 번 더, 한 번 더를 여러 번 하고서야 OK 사인이 떨어졌다.

2010.3.28.17:11


대전에서 방송제작을 위해 함께한 리포터는 태어나 이날 가장 많이 걸었다 한다.
아마 이날 걸은 것이 한참이 아닌 반참 조금 더 걸었을 것이다.
동행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옛길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임이다
한참을 걸어야 하기에 힘들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는 동행이다.

이제 집으로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함안면 소재지까지 걸어 버스를 타고 가야읍으로 이동, 버스를 갈아타고 신당고개까지..
결국 해가 저물어 집에 들어갔다.

다음 동행은 벚꽃길 따라 창원 안민역에서 진해 웅천 보평역까지의 한참을 걷게 된다.

동행 취재한 방송은 4월 5일 (금) 오후 5시 30분 MBC 생방송전국시대입니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방송될 것입니다.

동행에 함께 하실 분은 055-265-0021로 전화를 주세요, 아직 몇 자리 비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