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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30

작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노무현대통령 묘역 어제는 가을비가 넉넉히 내렸고, 오늘은 비칠락 말락 합니다. 금요일 저녁 일정이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나 토요일 오후에나 정신을 차렸습니다. 무엇을 할까 하다 봉하마을을 갔습니다. 블로그 이웃 달그리메님이 봉하마을을 다녀오고 올려놓은 글을 보고 마음이 동했습니다. 서울의 장례식에 참석하였지만 안장식에는 참석하지 못해 가야지 가봐야지 하면서도 가질 못했습니다. 창원에서 봉하마을까지 20여 분 걸렸습니다. 멀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르지 않아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복원한 생가를 그냥 지나치고 묘역으로 바로 향했습니다. 토요일 늦은 시간이었지만 참배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묘역이라 그런지 황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2009. 9. 28.
'사이' 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49재가 있은 다음 날 토요일(7월11일) 경남 창원에서는 정당,시민 사회 단체가 함께한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경남도민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며 화,수,목,금 창원 촛불의 장소인 정우상가에서 매일 주제를 가진 시국농성을 하였습니다. 말이 시국농성이지 비와 바람과 싸우는 농성이었습니다. 그냥 천막치게 두어도 될 것을 박완수 창원시장은 천막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경찰은 이를 집행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분이 싫어하는 일이라 그랬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 입니다. 내년이 때가 때인지라.. 경남도민일보 관련기사 오늘부터 도청서…MB악법 철회 등 요구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91530 빗속 시국농성….. 2009. 7. 14.
창원시 자전거정책 이의있습니다. 자전거는 장거리 이동수단이 아니라 일상의 이동수단입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 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전거를 애용할 수 밖에 없었던 조건이 있었다고 봅니다. 바로 봉하마을이라는 지역적 조건입니다. 봉하마을을 가 보신 분은 봉하마을이 교통이 불편한 오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도 많이 없습니다. 잠시 잠시 이동을 하는 방법으로 오토바이 혹은 자전거가 딱입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오토바이를 타기에는 뭔가 2% 어색하고 자전거를 택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손녀들과 산책하기에도 자전거가 좋았을 겁니다. 또 하나의 조건은 자전거 전용도로에 가까운 봉하마을의 도로입니다. 촌이다 보니 평일 도로에 거의 차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 노무현 전대통령께서 자전거를 .. 2009. 6. 2.
5월 마지막날 봉하마을 밤풍경 심리학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이별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억지스런 추측이지만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3년상을 하지 않았나 하는 비약도 해 봅니다. 어제 김주완 기자의 블러그 기사 "국민장 끝나자 봉하마을 행정지원도 '뚝' "을 보고 밤늦게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습니다. 교통통제도 풀렸고 북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무현 전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노사모 기념관을 둘러보며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분향소가 있는 입구에는 '국장기간이 끝남에 따라 행정안전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안내 대자보가 있었습니다. 조문을 하는 사람들이 봉.. 2009. 6. 1.
노대통령 영전에 바친 3천배 살아계실 때 해드리고 싶었는데 내일이면 노무현 前대통령의 장례식이 경복궁에서 거행된다. 노前대통령 추모 분향소가 전국에 수백개가 세워졌고,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는 사람이 수백만을 헤아린다. 먼 길 마다않고 봉하마을을 찾아 노前대통령을 추모하는 조문객만도 하루 수십만에 이른다. 하루 일을 끝내고 밤길을 몇 시간 달려 영전에 국화 한 송이 올리고 또 새벽길을 달려 일터로 돌아가는 무박 2일의 조문이 생소하지 않다. 조문 자격논쟁이 벌어졌고 그것이 일단락 되고나니 일부 권력층과 관료들의 눈꼴사나운 분향태도에 대해서 시민들은 항의하고 이것이 실시간으로 블로거들에 의해 알려진다. 정부에서는 추모열기의 과열에 겁먹어 소요우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추모객들은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분명 국민과 현 정부는 180도 다른 사고를 하고 있.. 2009. 5. 28.
노무현 전대통령 빈소에 차렸던 음식으로 음복을 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먹고 봉하마을 노짱을 뵈러 갔다. 첫 날 봉하에서 밤샘을 하였지만 헌화는 하지 않았다. 출발전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입고가야 하나..양복을 입을까..일상복으로 입을까..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래,,그냥 일상의 모습으로 가자.. 지난번과 같이 진영읍을 통해 노짱이 중학교를 다니던 길을 따라 갔다. 스쿠터라 다른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커피 한 잔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첫 날에 비해 많은 것이 새로 갖추어졌고 질서도 잡힌 것 같다. 분향소에는 도저히 조문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10시경 노사모 기념관 임시분향소로 갔다. 마침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4명이 한번에 헌화를 하거나 분향.. 2009. 5. 26.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KBS중계차 최후는 노前대통령은 가시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하셨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이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슬퍼한다. '미안해 하지 마라' 하셨지만,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차마 죄송해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하셨지만,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부친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운명이다' 하셨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당신의 죽음을 보며 확신한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하셨지만, 당신의 바람 민주주의 네 글자를 사람들 심장 마다 붉은 글씨로 새길 것입니다.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밝은 날의 일정을 고려해 새벽 3시경 봉하마을을 뒤로하고 창원으로 돌아왔다. 봉하마을을 나오다 봉하마을에서 쫓겨.. 2009. 5. 24.
봉하마을 24:00 - 흰국화와 촛불로 승화한 노대통령 밤 12시를 넘기고 날이 바뀌어 1시가 되어도 추모의 발길은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귀천 / 천상병 글 / 김산 노래 기자들의 취재 열기는 조금 식었지만 조문객의 조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도 길게 줄을 섰다. 조문객이 계속 늘어나 임시 분향소의 영정도 바꾸고 조문을 위한 국화도 준비를 하였다. 1시 20분을 지난 현재 조용하고 숙연한 분위기 이지만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조문객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빈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포개져 간다. 노대통령의 영정 앞에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 사람들은 노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바람이 무엇인지 가슴에 새길 것이다. 슬픔은 분노로, 분노는 민주주의로 승화할 것이다. 흰국화가 봉하마을에 쌓여 가듯 못다이룬 꿈은 영글어 갈 것이다... 2009. 5. 24.
봉하소식 22:40-시간이 지날수록 조문객 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봉하마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문객이 늘어나고 있다. 평소 차로 10분이 걸리지 않는 진영에서 봉하마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리고 있다. 임시 분향소에도 길게 줄이 늘어나고 있다. 임시분향소에는 가족 단위의 일반인들이 많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조문객들이 부쩍 늘었다. 누가 이 아이들의 손에 다시 촛불을 들게 한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으나...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촛불로 승화되어 가고 있다. 2009.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