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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근16

문성근의 창원 시월 민란이 시작된다. 6.2 지방선거 하루 전 날 창원에서 지역주의 벽에 구멍을 내자고 호소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노무현의 남자 문성근이다. 그 사내의 소원을 경남도민은 들어주었다. 그렇게하여 탄생한 것이 김두관 도정이다. 그렇게 지역주의 극복을 외쳤던 그 사내가 다시 창원에 온다. 그 사내는 경남도민이 보여준 그 힘을 믿고, 2012년에 새로운 꿈을 꾸고있다. 그래서 국민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민란을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딱 절반이었던 8월 25일 민란을 선언했다. 2012년 제대로 된 정권을 세우기위해 백만명의 민란군을 모으겠다는 당찬 소원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헛꿈처럼 보이지만 그 사내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치 않는다. 6월 1일 노무현의 고향 경남에서 지역주의 벽에 구멍을 내자고 소리 높.. 2010. 10. 20.
유세하는 문성근과 김두관 사이 선글라스 할아버지? 혹 텔레비전 방송에 얼굴이 나온 적이 있으세요? 저는 가끔 기자회견을 하다 보니 뉴스에 얼굴이 나옵니다. 처음 방송에 얼굴이 나왔을 때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일이니까요. 나쁜 일이 아니라면 방송을 타고 싶은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일반인이 어떤 일로 텔레비전에 나오면 방송 나왔더라며 안부를 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 전 제가 일하는 단체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매월 역과 역을 있는 옛길을 찾아 걷는 모임이 있는데, 방송국에서 동행취재 요청이 왔습니다. 저희 단체야 손해 볼 것 없으니 취재에 응했습니다. 종일 방송 녹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제작된 것이 전국 방송을 탔고 재방송도 되었습니다. 저도 인터뷰를 땄지만, 방송에는 발만 나왔습니다. 그 방송에 .. 2010. 6. 2.
문성근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 내려온 까닭?' 지방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어제 배우 문성근 씨는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출마한 김두관 후보를 지원하였습니다. 꼭, 김두관 후보만 지원한 것은 아닙니다. 경남이 야권단일화를 이룬 곳이라 유세현장에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창원시장 후보와 그 지역구 도의원 후보, 기초의원 후보도 함께하는 합동유세였습니다. 오후부터 창원, 마산 유세가 집중되었는데 30분, 1시간 간격으로 바쁘게 이어지는 강행군이 밤 10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문성근 씨의 지원유세는 항상 김두관 후보 앞에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두관 후보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5군데 유세장을 쫓아다녔습니다. 아마, 6.2 지방선거의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문성근 씨의 지원유세의 레퍼토리는 서울에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지.. 2010. 6. 2.
노무현의 남자 문성근, 리틀 노무현 김두관을 위한 호소? 선거 마지막날 노무현의 남자 문성근 씨가, 리틀 노무현 김두관 후보를 지원하였습니다. 제가 모든 곳을 취재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장 취재한 곳은 다섯 곳입니다. 2시30분 창원대 앞 5시30분 상남동(여기는 늦게 도착했습니다) 6시 대방동 6시30분 반송시장 9시 마지막 유세인 상남동 분수광장입니다. 뭐라 해야 할까요. 절절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2시30분 창원대 앞 유세가 밋밋했다면 6시 대방동 유세는 정말 절절 했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문성근씨의 연설 그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으로 내려 온 이유라고 했습니다. 노무현의 남자 문성근 씨의 유세를 직접 들어보세요. 김두관을 선택하는 것은? 김두관은 경남도지사 당선으로서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고, 낙동강도 살리고, 무상급식도 실현하겠.. 2010. 6. 1.
언론이 움직였다. 경남판세 김두관으로 쏠렸습니다. 선거 마지막 날 입니다. 그동안 경남은 초방빅 지역으로 전국이 주목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경남의 기존 선거로 볼 때 지금까지 김두관 후보의 선전은 다들 기적이라 했습니다. 근데 오늘 그 기적이 거의 사실로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오후 3시30분 창원대학 앞에서의 유세입니다. 문성근씨가 김두관 후보와 함께 움직이며 지원유세를 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움직였습니다. 사실 창원대 유세는 집중 유세는 아닙니다. 5시 30분 상남동 유세가 있고, 경남대 유세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9시에는 마무리 유세도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모두 모였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언론에서 발표를 하지 못할 뿐이지 지속적으로 여론 조사를 하고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부적으로는 공유하며 어디에 취재.. 2010. 6. 1.
장대비, 노무현대통령 1주기 창원추모공연현장 어제 22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창원 추모공연에 억수같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산, 창원, 진해 시민이 중심이 된 경남도민은 노무현 대통령 고향에서의 추모공연을 사수했습니다. 마치 91년 부산대학에서 장대비 속에 개최했던 전대협출범식이 연상되었습니다. 창원에는 오전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7시부터 추모공연 시작인데 내리는 비가 얄미웠습니다. 오후가 되니 더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을 이때 하는 것일 겁니다. 6시경 추모공연 장소인 창원 만남의 광장에 갔습니다. 광장에는 의자가 끝도 없이 깔렸고, 바닥은 빗물로 흥건합니다. 공연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지만, 내심 비 때문에 시민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 되었습니다. 6시 30분 100인 시민합창단 연습입니다. 비 때문에 도착.. 2010. 5. 23.
노무현 전대통령 빈소에 차렸던 음식으로 음복을 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먹고 봉하마을 노짱을 뵈러 갔다. 첫 날 봉하에서 밤샘을 하였지만 헌화는 하지 않았다. 출발전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입고가야 하나..양복을 입을까..일상복으로 입을까..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래,,그냥 일상의 모습으로 가자.. 지난번과 같이 진영읍을 통해 노짱이 중학교를 다니던 길을 따라 갔다. 스쿠터라 다른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커피 한 잔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첫 날에 비해 많은 것이 새로 갖추어졌고 질서도 잡힌 것 같다. 분향소에는 도저히 조문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10시경 노사모 기념관 임시분향소로 갔다. 마침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4명이 한번에 헌화를 하거나 분향.. 2009.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