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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노무현김대중34

김대중,노무현 두 분 대통령 사랑법 2009년은 국민들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한 해가 되었다. 이번 달 28일이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0일 탈상일이다. 노 전대통령의 탈상 전에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맞이하였으니 국민들은 더없이 안타까운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닮은 점은 많다. 그런데 국민들이 잘 모르는 닮은 점이 있다. 도서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서에 당신의 심경을 책을 읽을 수 없다고 썻고,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후 도서관을 만들었다. 두 분 대통령의 책에 대한 사랑은 특별했고 재임시절 정책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요즘 웬만한 학교도서관을 가면 감짝 놀랄만큼 잘 가꾸어져 있다. 내가 속한 단체는 도서관운동을 한다. 10년 전만 하여도 대부분 학교도서관은 죽어있는 이름뿐인 도서관이었다. 김.. 2009. 8. 22.
김대중 대통령후보와 함께한 세번의 선거 어제부터 창원촛불광장인 정우상가 옆에 김대중대통령 추모분향소가 마련되었다. 도청과 민주당사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지만 시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분향소를 만들었다. 아직은 지역색이 있는 탓일까 경남 창원에는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도 중년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학생들이... 햇빛이 강한 하루였다. 12시부터 4시까지 시민상주를 하였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상주를 자처하였지만,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을 맞이하면서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리를 했다.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대학 1학년이었던 1987년 대통령선거였다. 87년 6월항쟁이 있었고,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 2009. 8. 21.
5월 마지막날 봉하마을 밤풍경 심리학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이별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3년이라고 합니다. 억지스런 추측이지만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3년상을 하지 않았나 하는 비약도 해 봅니다. 어제 김주완 기자의 블러그 기사 "국민장 끝나자 봉하마을 행정지원도 '뚝' "을 보고 밤늦게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었습니다. 교통통제도 풀렸고 북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노무현 전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노사모 기념관을 둘러보며 조용한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분향소가 있는 입구에는 '국장기간이 끝남에 따라 행정안전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이 끊어져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는 안내 대자보가 있었습니다. 조문을 하는 사람들이 봉.. 2009. 6. 1.
MB는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지만 추모의 발길은 오늘도 봉화마을에 끊이지 않았다. 경복궁 영결식이에서 한명숙 전총리의 조사는 온국민을 울렸다. 서울광장 노제에 모인 수십만 인파와 TV를 통해 노제에 함께했던 국민들은 바보 대통령 노무현을 노란 풍선과 함께 하늘로 보내고 마음속에 고이 모셨다. 29일 봉하마을의 발인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로 향했다. 대통령이 잠시 쉬어간 입장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고, 차 안에서 경복궁 영결식을 보았다. 서울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수 십만의 인파가 모여있었다. 먼 발치에서 노 전대통령이 가시는 길을 마음으로 빌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말 이라고는 "'편히 쉬십시오.' 대한문 앞에 노전대통령 뒤를 따르는 만장이 지날 때도 대통령은 웃고 계셨다... 2009. 5. 30.
3천배 받고 빚쟁이가 된 노무현 전대통령 앞글 : 2009/05/28 - 노대통령 영전에 바친 3천배 살아계실 때 해드리고 싶었는데 7시30분에 시작한 3천배가 다음날 아침 5시12분에 끝났다. 9시간 42분 걸렸다. 8시간 정도를 곁에서 지켜보며 취재를 한 내가 피곤한데 3천배를 올린 재호씨는 오죽했을까? 불가에서 삼천배를 논할 때 성철스님이 반드시 등장한다. 성철스님은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라. 그것이 참 불교이다. " 참 불공이란 목탁을 두드리며 불단에 음식을 차려놓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몰래 돕고,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원망하는 원수까지도 부처님처럼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인 것이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고 사는 이가 있다면 그도 역시 부처님이다." 흔히 삼천배를 올리고 나면 나를 버리고 원수까.. 2009. 5. 28.
노대통령 영전에 바친 3천배 살아계실 때 해드리고 싶었는데 내일이면 노무현 前대통령의 장례식이 경복궁에서 거행된다. 노前대통령 추모 분향소가 전국에 수백개가 세워졌고,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는 사람이 수백만을 헤아린다. 먼 길 마다않고 봉하마을을 찾아 노前대통령을 추모하는 조문객만도 하루 수십만에 이른다. 하루 일을 끝내고 밤길을 몇 시간 달려 영전에 국화 한 송이 올리고 또 새벽길을 달려 일터로 돌아가는 무박 2일의 조문이 생소하지 않다. 조문 자격논쟁이 벌어졌고 그것이 일단락 되고나니 일부 권력층과 관료들의 눈꼴사나운 분향태도에 대해서 시민들은 항의하고 이것이 실시간으로 블로거들에 의해 알려진다. 정부에서는 추모열기의 과열에 겁먹어 소요우려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추모객들은 차분하게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분명 국민과 현 정부는 180도 다른 사고를 하고 있.. 2009. 5. 28.
노무현 전대통령 빈소에 차렸던 음식으로 음복을 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먹고 봉하마을 노짱을 뵈러 갔다. 첫 날 봉하에서 밤샘을 하였지만 헌화는 하지 않았다. 출발전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입고가야 하나..양복을 입을까..일상복으로 입을까..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래,,그냥 일상의 모습으로 가자.. 지난번과 같이 진영읍을 통해 노짱이 중학교를 다니던 길을 따라 갔다. 스쿠터라 다른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커피 한 잔하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첫 날에 비해 많은 것이 새로 갖추어졌고 질서도 잡힌 것 같다. 분향소에는 도저히 조문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10시경 노사모 기념관 임시분향소로 갔다. 마침 조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4명이 한번에 헌화를 하거나 분향.. 2009. 5. 26.
노무현前대통령을 조문하려면 자기 고백부터 하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연인 노무현은 떠났습니다. 자연인 노무현에 대한 조문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연인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아니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연인이기도 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이 우선되는 위치에 계셨습니다. 그러기에 자연인 노무현은 자살하였지만, 정치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임을 당한것입니다. 망자를 보내는 장례의식은 죽은자와 산자, 산자와 산자가 화해하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화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슴에 칼을 품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망자에 대한 기만이고 두번 죽이는 일입니다. 지금도 봉하마을에서는 쫓겨가는 정치인과 언론이 있고, 내팽겨쳐진 조화가 있습니다. 그들을 .. 2009. 5. 25.
봉하마을에서 쫓겨난 KBS중계차 최후는 노前대통령은 가시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하셨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이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이 슬퍼한다. '미안해 하지 마라' 하셨지만, 당신을 지켜드리지 못해 차마 죄송해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하셨지만,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부친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운명이다' 하셨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남은 우리들은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당신의 죽음을 보며 확신한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하셨지만, 당신의 바람 민주주의 네 글자를 사람들 심장 마다 붉은 글씨로 새길 것입니다.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밝은 날의 일정을 고려해 새벽 3시경 봉하마을을 뒤로하고 창원으로 돌아왔다. 봉하마을을 나오다 봉하마을에서 쫓겨.. 2009.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