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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치수다

23년 전 6월 거리에 선 이유와 추모박석에 새긴 글

by 구르다 2010. 6. 10.
참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오늘이 6.10 민주항쟁 23주년이다.
스무 살 청년이 불혹을 넘겨버렸다.


▲ 바닥돌에서 본 작은비석


1987년 6월 10일 그날 나는 마산 거리에서 돌을 던졌다.
그리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

대학 1학년인 내가 그날 그 거리에 선 것은, 거창한 사상이나 이념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또, 변치 않는 신념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이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의 가책이었다. 그래서 거리로 달려나갔다.

그날 그 거리에 서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교도소를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오랫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취직해서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때 가졌던 그 양심의 가책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문득문득 콕콕 심장을 찌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지금보다 결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작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단장하며, 국민 참여로 바닥돌을 신청받아 하나를 신청했었다.
2009/12/16 - 노무현 대통령 묘역 바닥돌 신청하다

지난 5월 23일 봉하마을을 찾았고, 묘역에 들렸지만 1만 5천 개의 바닥돌 중에 내가 신청한 바닥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미리 박석 위치를 알아두었다. 지난 6월 4일 6.2지방선거 당선자들과 민주당 지도부가 봉하마을을 방문하고 참배하는 날 취재차 갔다 바닥돌도 확인하였다.



바닥돌에 새기는 글자 수 제한으로 아이들 이름으로 신청 글귀를 만들었다.
"세 아이 미루 하늬 단비와 약속합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겠다는 약속이고, 아이들이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 주기를 바람으로 새겨 넣은 것이다.

내가 신청한 바닥돌 아래 우연하게도 얼굴을 모르는 '나연 가족'이 4개의 바닥돌에 "훗날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궁금해하면 당신의 삶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 이제 우리가 만들겠습니다. - 나연가족"이라고 새겨 놓았다.

내 마음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 바닥돌에 아이들의 이름을 새기다. 2010.6.4. 노무현 대통령 묘역



바닥돌 위치를 사람 사는 세상에서 찾다. 1만 5천 개의 바닥돌 글귀 중에 같은 것이 없다는 댓글을 보았다.
저마다 같은 뜻을 다 다르게 적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님은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1만 5천 개의 바닥돌 글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것을 외우고, 그 안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가 사는 경남에서는 6.10항쟁 20주년을 보내면서, 경남지역 6월민주항쟁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20주년 기념식에 맞추지는 못했지만 2008년 11월 17일 "항쟁의 시대와 그 기록 출판기념회"를 하였다.
2008/11/18 - 정권이 바뀌니 껍데기는 홀라당

▲ 항쟁의 시대와 그 기록 출판 기념회, 발간 책임자 박영주 지역사학자, 2008.11.17.천주교마산교구청 강당



운 좋게 그 기록에는 87년 6월 나의 기록도 들어 있다.

▲ 경남지역 6월민주항쟁 자료집. 항쟁의 시대와 그 기록. 2008.10 발행. 발행인 김영식, 6월민주항쟁 20주년기념 경남추진위원회


작년 6월 9일 전국적으로 대학 교수님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우리 지역 역시 시국선언을 했다.
시국선언에 대한 글을 적으며, 정권이 파시즘으로 갈 수 있다고 적었다.
2009/06/10 - MB는 내 인생을 도적질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6월 10일 촛불집회가 있었다. 작년 글에서도 '언제 그날이 올까?'라며 민심을 말했다.
2009/06/11 - 해고는 ( )입니다. 6.10 창원 촛불
그런데 딱 1년 만에 민심은 23년 전에 들었던 돌이 아니라, 투표로 MB 정권을 심판해 버렸다.

20여 년 전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던 김영삼이 민정당으로 투항해 민자당을 만들어 경남과 부산의 야성을 뭉개버리고 지역주의 볼모로 만들어 수구보수 꼴통의 생명을 연장하였다.
그런데 2010년 6월 10일은 그 20년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경남도지사로 당선된 김두관 지사의 인수위원회 구성을 알리는 날이다.
이렇게 역사는 멈춘 듯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역사의 당위성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