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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갱상도정치

경남에서 본 서울선거와 척박한 정치토양

by 구르다 2010. 6. 7.
서울시장 선거결과를 두고 누구의 잘못이 큰지 공방하는 꼴이 사납다.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경남이라는 지독히 지역주의가 판을 치는 곳에서 정치를 해봤다면, 아니 투표를 해봤다면 이런 공방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책임공방 논쟁이 생산적인가 소모적인가 따져봐야 한다. 논쟁 자체가 소모적이지는 않다.
다만 마무리를 잘못하여 서로 지울 수 없는 생체기만 남긴다면 소모적인 논쟁이 되고 만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으로 갈라저 화해가 힘든 것은 노선 문제도 있지만, 솔직하게 따져보면 감정의 문제 서로에게 남긴 상처 때문이지 않을까?


경남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서울 선거 결과는 노회찬 후보의 잘못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노회찬 후보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노회찬 후보를 지지한 3.3%는 어쩌면 노회찬 후보가 사퇴하고 단일화했더라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이를 갈며 분통 터져할, 충성도가 높은 열혈 당원이나 지지자다. 그분들은 어쩌면 한명숙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고, 그런다고 진보정치에 무슨 변화가 있느냐는 식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일화로 단지 당선 기대심리가 높아 투표율이 좀 더 나올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라면 서울에 계신 분들이 좀 더 분발해서 투표율을 올렸으면 될 일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고 본다, 그것이 한나라당의 벽을 넘어설 정도는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항상 비판을 하는 자기 내부에서 찾으면 간단한 문제이다.

▲ 서울시장 선거결과




단일화하지 못한 것의 아쉬움이라면 당락의 문제가 아닌, 이어지는 선거를 볼 때 하나의 큰 흐름이 되기에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비록 당선은 안됐지만, 경기도에서 보여준 심상정 후보의 결단은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단일화하고도 패한 경기도의 교훈을 찾으라면 힘으로 강요하는 방식의 단일화는 사람의 표심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공학의 단일화가 아닌 인간미 있는 배려의 단일화가 중요하다.
2010/05/28 - 유시민의 국민감동 심상정으로 단일화하라


경남에서도 아까운 선거가 있었다. 바로 경남 거제시장 선거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단지 단일화가 안돼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세가 비슷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힘겨루기하였다. 민주노총 현장의 다름이 시장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한다.
만약이 있을 수 없지만, 만약 후보를 단일화했다면 한나라당 후보가 시장 되는 것은 막아내지 않았을까? 그럼 거제에서 진보 정치의 토양이 많이 개선되지 않았을까?

▲ 거제시장 선거결과




경남 창원에서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창원 사파,대방,상남 선거구에 진보신당 여영국 도의원 후보가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민주노동당이 그쪽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창원시에 기초의원 7명을 출마시켜 전원 당선시켰다. 3인 선거구에 두 명을 내보내 모두 당선되기도 했다. 도의원도 5명을 출마시켜 3명이 당선되었다. 이것은 야권단일화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보신당이 야권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진보신당 도의원 후보가 나온 곳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에서 그곳은 민주노동당이 강한 곳이라 우기며 후보를 출마시켰다면 한나라당 후보가 도의원이 되었을 것이다.

진보신당에서는 도의원 한 명을 배출한 것이 되고, 민주노동당에서는 한나라당 후보 한 명을 떨어뜨린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자기 후보 한 명이 당선 안된 것이 아니고, 한나라당 후보 한 명을 떨어뜨렸다 생각하면 기분 좋은 것이다.

▲ 민주노동당 문성현 선거본부 개소식에 참석한 여영국 진보신당 후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토양은 진보의 나무가 자랄 수 있게 개선하는 중은 아닐까?
20년 전에는 독재라는 나무만 자라는 토양에 민초가 강한 생명력으로 토양개선을 했고, 그 결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나무가 자랐고, 진보의 씨앗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아직은 진보라는 큰 재목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토양이 아닌데, 저마다 자기 마음에 차는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독재의 나무가 숲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언제든지 숲을 점령하여 나머지 세력은 고사시켜 버릴 힘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는 자만했고 바람막이, 그늘을 만들 수 있는 나무에 생체기를 내며 내 나무만 고집하지 않았을까? 그 결과 민초가 자라는 숲이 황폐화되지 않았을까?

선택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나무를 경쟁적으로 계속 심을 것인지, 아니면 꼭 마음에 드는 나무가 아니라도 잘 심어 토양을 개선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경남에서는 김영삼이 심하게 오염시킨 지역정치 토양 정화에 20년 걸렸다. 이제 겨우 그늘을 만들고, 바람막이가 될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저마다 큰 나무만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나무지만 진보라는 이름의 나무도 여러 그루 심었다. 머지않아 진보의 큰 나무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숲이 성장하는 과정이 그렇다.

4대강이 알몸을 드러내 놓고 심하게 신음한다. 이번 지방선거로 그 알몸의 강에 고운 흙이 덮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다시 떠났던 생명이 찾아올 것이다.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숲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진보신당이 이렇게 생각을 해보았으면 한다. 우리는 진보라는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씨앗은 무한하지 않다. 그런데 아직 진보의 나무를 심어 크게 숲을 이루기에는 토양이 빈약하다. 어떻게 할까? 큰 나무와 경쟁해야 할지, 아니면 작은 곳에서부터 출발할지 선택해야 한다. 또 세력이 큰 정당은 힘으로 강요하는 것이 올바른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경남 창원에는 민주노동당이 제법 숲을 이루었다. 만약 이번에 야권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민주노동당은 숲을 확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민주노동당이 욕심을 부렸다면 진보신당의 나무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놓고 보면 경쟁 관계지만, 불통이라는 큰나무가 하늘을 가린 현실을 인정한다면 충분히 그 나무에 맞서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저마다 나무를 심자고 달려들어 모두 죽을지, 아니면 조금 양보해서 그 중 튼실하고 바른 나무를 골라 심을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 나무가 많아 숲을 이뤄야 어린나무와 민초도 뜨거운 햇볕이나, 찬 바람을 막아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