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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가족

50년 전 창원천에 놓였던 다리

by 구르다 2008. 11. 14.

몇 년 전부터 집에 있는 부모님 앨범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어떻게 정리할까 궁리만 했었다.
낡은 사진들 속에는 우리 가족의 역사와 더불어 창원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첩을 사무실로 들고와서 정리를 하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시작을 미루고 있다.

이 사진 속의 역사를 부모님이 돌아 가시기 전에 정리하려고 한다.
부모님 연세가 일흔다섯이시니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은 것은 아니다.

김주완 기자가 포스팅한 1945년 염전 사진을 보여드리니

사진출처 https://100in.tistory.com/509


어머니는 눈이 나쁘셔서(당뇨로 한쪽은 실명이시다) 정확히 알아보시지 못하지만 어디쯤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말씀해 주신다.
아버지께서는 눈이 밝으셔서 사진을 보시고는 이건 누구집 것, 또 이건 누구집 것 하면서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이 사진은 1960년 4월 9일 진해벚꽃장(군항제)을 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뒷면에 4293.4.9 라고 적혀있다. 이 당시에는 단기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작년 이 사진을 꺼내 놓고 어머님께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여쭙고
그것을 나름 기록했는데 그 뒤로는 짬을 내지 못했다.

현재 위치로는 동원참치 앞에서 해안도로 쪽으로 건너는 다리이다.
아마 뒤 쪽이 염전일 것이다.

 
단기 4293년 4월 9일/진해군항제가는 길

 


우리집은 해정(덕정)이었다.
지금의 로템이 공장을 짓고 있던 1978년 5월6일 이사를 하였다.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합성했다. 2014.4.1

 


이 당시에는 덕정에서 진해를 가기위해서는 신촌으로 가야했다.
그러다보니 창곡으로 둘러가는 것은 먼 길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봉암으로 질러갈 수 있는 뒷개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진해까지는 봉암에서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저 강에서 물놀이도 하고, 새우도 잡고, 갈기(게)도 잡고 놀았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다.
어쩌면 우리가 노력한다면 10년, 20년 뒤에는 다시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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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7. 박영주 학예사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인텨뷰했다.
2022년.2.12. 자료 보완

염보우메 시연
염보우매. 염도를 측정기 2015년 7월 7일
박영주 선배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인터뷰 창원 염전에 대하여. 2015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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