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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치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주영 왕회장을 넘을수 없다

by 구르다 2009. 6. 14.

»사진출처 한겨레 / ‘맞잡은 손, 분단의 벽을 넘다!’ 1989년 8월15일 임수경씨와 문규현 신부가 손을 맞잡고 판문점을 걸어서 넘어오고 있다. 분단을 가로지르는 역사적 넘나들기였다.

김대중 前대통령의 6.15선언 9주년 기념강연에 대하여 분단고착지향 세력은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며 막말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들이 좋아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어른에 대한 경노효친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함이 가득하다.(이때 우리는 통상적으로 자식을 잘못 가르친 에미애비를 욕하거나 가문을 따지게 된다. 뉘집 자식인지 쯔쯔라고...)
그래서 정치는 사람을 사람이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 노통은 자식들보고 정치하지마라 했을까..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게 아닌데,,다른 기사들을 보니 살짝 열을 받는다..

1989년 문규현신부님과 임수경은 기어이 걸어서 휴전선을 넘었다. (1989년은 노태우씨가 대통령을 하던 때로 5.3 동의대 사건 이후로 공안정국이 형성되었고, 제13차 세계평화축전이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당시 임종석<민주당 前국회의원>이 전대협의장을 하고 있었으며, 전대협 대표로 임수경씨가 방북을 하였다. 나는 당시 대학3학년 이었고 한양대를 침탈한 전경에 잡혀 개고생을 했다. 아마 같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임수경씨가 방북을 한 것도 국민들에게는 충격이었고, 걸어서 휴전선을 넘어 돌아온 것도 충격이었다. 그렇게 분단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 사진 출처 한겨레/정주영은 남북의 화해협력과 경제협력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흠잡을 곳이 없는 ‘선각자’라고 할 수 있다. 98년 10월 ‘소떼’방북때.(이정용 기자)

그로부터 9년 뒤인 1998년 정주영 회장은 "이제 한 마리 소가 천 마리의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며 6월16일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분단의 벽에 아주 커다란 구멍을 내 버렸다. 연이어 그해 10월에 소 501마리를 이끌고 또 휴전선을 넘었고 이것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마침내 1998년 11월18일 오후 5시43분 강원도 동해항에서 분단 이후 첫 금강산관광선인 현대금강호가 826명의 일반관광객을 태우고 북쪽 장전항을 향하게 되었다.(나는 2002년 설봉호를 타고 금강산을 다녀왔다. 서너번은 더 가보고 싶었는데..언제 갈 수 있을까?)

이런 정주영 회장의 통큰 추진력이 이후 국민의 정부 6.15선언과 참여정부의 10.4 선언을 가능하게 한 출발이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백범 김구선생님과 문익환 목사님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너그럽게 봐 주시길..)

우리사회에서 기업인이 결코 존경 받을 수 없는 기업문화와 정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왕회장이 존경받는 인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업경영 때문이 아니라 바로 분단의 벽을 허문 통일에 대한 기여 때문이다.

금강산과 개성은 지금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돈과 시간만 되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주영 왕회장이 실과 바늘 관계였다는 것은 티비드라마가 될 정도로 역사가 되어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정주영 왕회장을 부정하였다.
추측건데 그것은 왕회장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 왕회장의 등에 칼을 꼽으며 3당야합으로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김영삼 전대통령의 선거를 도우면서 시작한 자신의 정치행보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 본다.(헉, 그러고 보니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대통령도 묘하게 이 부분에서 꼬이게 되는 군요...기억하시죠,,"이의있습니다")
자신은 왕회장과 닮지 않았다고 하지만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사업과 버스중앙차로제 등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주영 회장을 떠 올리게 되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된 현재 국정운영 방식 역시도,,

그러나 두 사람은 닮은 듯 하면서도 분명 다르다. "눈이 올 때는 마당을 쓸지 않아야 한다"는 기다림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투자의 방식도 다르다. 특히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다르다.

정주영 왕회장은 1998년 6월 동해에서의 북한 잠수정 발견과 8월의 대포동 로켓(OR 미사일) 발사가 있었던 긴장을 소떼 1001마리로 녹여버렸다.(* 여기서 잠깐..북에서 잠수함 보내고, 대포동 로켓 쏘고 한 것이 국민의정부 이전 정부에서 혹 퍼주기를 해서 그랬을까? 이건 김영삼 전대통령이 학실하게 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정반대로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잘하고, 개성에서 남쪽 기업가들이 공장까지 팽팽 돌리는 좋은 분위기를 핵무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엄혹한 분위기로 단 1년만에 만들어 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정주영 왕회장은 분명 다르다.
특히 정주영 회장이 10년 걸려 이루어 놓은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단 1년만에 엎어 버리는 비범함까지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 이런 것을 어떻게 기록할까?

정주영 회장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4번의 가출을 하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신으로 최고 경영자가 되었고, 말년에 대선에 도전하여 실패했지만 분단의 벽을 허무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기업가였지만 존경받는 역사의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 등에 칼을 꼽고 그와 다른 정치행보를 함으로써 마침내 정주영 회장이 오르지 못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앞으로 역사는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할까?


6월15일을 기억하면서 500마리 소떼가 휴전선을 넘은 6월16일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PS,,김동길 어르신은 정주영 회장 밑에서 정치하지 않았나요...근데 요즘 보면 그 시절 다 잊어버리신 것 같아요..
또 한마디..혹 정주영을 친북이다..퍼주기다..좌빨이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생각하고 댓글 다시길,,정주영 회장이 만약 친북이면 그 자제분들은 뭐며, 그 밑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도 혹 세뇌되지 않았을까?
전투기와 충돌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롯데월드를 허가해 주는 것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이 글은 한겨레신문기사와 몇 개의 카페, 블로그 게시물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