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발로/길걷기

벽송사 미인송 허리 꺽인 사연 아세요?

by 구르다 2009. 9. 16.

지리산 벽송사에 가면 잘생긴 두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 사진의 왼쪽이 도인송, 오른쪽이 미인송이다.


대웅전 위쪽 공터엔 1000년 묵은 소나무가 자라는데 도인송(道人松)이다. 나이에 걸맞은 굵고 반듯한 줄기에 잎들은 원뿔 모양으로 뭉쳤다.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심었고 그게 소나무로 승화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그는 500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공언하고 열반했다. 귀환한 시기는 아마도 1520년 무렵일 것이며 도를 깨친 벽송지엄 선사가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하는 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이 구부러진 미인송(美人松)은 환성지안 선사의 죽음과 사랑이 서린 나무다.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구부러졌다. 마치 미인송이 도인송을 보호하는 형국인데 넘어질 듯 하면서도 도인송이 비를 맞을까 불볕에 탈날까 감싸고 있는 듯하다.
 
부용낭자는 남몰래 스님을 연모하던 여자였다. 스승이자 정인의 억울한 죽음을 접한 그녀는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했다. 벽송사에서 스님의 정령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이었다. 그렇게 미인송은 이름과 사연을 얻었다. 그래서 일까 미인송에는 항상 학 한마리가 앉아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위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오는 도인송과 미인송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미인송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 처럼 미인송은 처음부터 비스듬하게 자란 것일까? 아니면 또 어떤 사연으로 그렇게 되었을까?

미인송을 뒤에서 보면 껍질이 벗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껍질이 벗겨진 시작점은 미인송이 상처를 입고 꺽인 곳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눈으로 쉽게 확인이 된다.

도대체 누가 이랬을까?
미인송이라 나뭇꾼이 연정이라도 품은 것일까? 아니면 말 못 할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지난 7월29일 경남정보사회연구소 마을도서관 실무자 수련회로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하였고, 우리 일행을 안내한 최헌섭 이사가 미인송이 말 못하는 가슴아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 최헌섭 이사(두류문화연구원 대표)가 미인송의 가슴아픈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미인송을 앞에서 보면 V자 모양으로 껍질이 벗겨져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처럼 비스듬이 자라다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해 생겨난 자연스런 상처로 보기에는 V자가 너무나 선명하다.

분명 짐승이 아닌 사람의 손에 생겨난 상처다.
누가 무슨 이유로 노송에 V자 상처를 냈을까?


▲ 미인송의 아래 부분에 V자 홈이 선명하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분들 중에 유채로 기름을 짜고, 송진으로 기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인 있을 것이다. 바이오디젤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르겠다.


그렇다 이 흔적은 바로 기름을 만들기 위해 송진을 뽑아 낸 흔적이다.
언제 누가 그랬을까?

이 상처는 노송이 많은 우리 산천에서 가끔 만나는 소나무의 상처다.
바로 일제말기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여 비행기 연료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반세기가 훌쩍 지난 민족의 아픈 상처다.
심하게는 나무뿌리조차 캐내고 삶아서 송탄유를 짜냈다고 한다.
(부분인용 :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의 만행) <- 클릭하시면 계룡산에서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 V자 홈 끝 부분에서 미인송이 꺽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을 광복절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태어 난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광복적을 건국절이라 부르라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아직 우리는 완전한 해방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왜곡된 역사 교과서에서, 훼손된 비석에서, 미인송이 안고 있는 상처에서 우리는 아직 일제 침략의 흔적을 고스란히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치유되거나 청산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은 완전한 해방을 맞은 것이 아니다.



미인송 뒷 편 산 언저리에 받침대에 의지한 두 그루의 노송이 더 있었다.
그러나 확인하지는 않았다.

미인송에 남겨진 일제 침탈의 흔적이 미인송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에 묻혀, 그 상처의 아픔마저 모르고 지나가지 않았으면 한다. 다들 벽송사 미인송을 만나면 미인송의 아픈 상처를 가슴으로 어루만져 주고 왔으면 좋겠다.

▷ 지리산 둘레길 관련 이전 글
2009/08/02 - [삶! 때론 낯선] - 지리산 마천 옻닭으로 몸안에 옻칠하고..
2009/08/04 - [삶! 때론 낯선] - 동구마천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서암정사 가는길
2009/09/12 - [삶! 때론 낯선] - 부속암자가 더 유명해진 서암정사
2009/09/15 - [삶! 때론 낯선] - 변강쇠는 벽송사 장승을 불태웠을까?


* 벽송사를 '백송사'로 잘못 표기하여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