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포왜성
근데 일본인이 한국와서 과연 뭘 보고 갈까?
단순히 돈이 적게 들어 한국관광 오는 거라면 앤화 값 떨어지면 관광 오지 않는다 말인데..
예전에는 부끄럽게도 일본인이 한국에 기생관광을 왔다. 그리고 한류 붐을 타면서 한류 스타들과 관련 된 곳이 관광지가 되었다. 한류도 영원한 것은 아니라 할 때 일시적 관광상품일 수 밖에 없다.
이 쯤 되면 한국관광산업은 일본인을 지속적으로 오게 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나라는 가지지 않은 우리만의 관광상품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의 기호는 끝없이 변하고, 유행도 자주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지나온 역사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얽혀 있다.
좋은 기억보다는 가슴아픈 기억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역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상품으로 만들고, 미래 공생을 위한 교류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장문포 왜성은 거제 장목만 서쪽입구 산위에 있는 일본식 성곽이다. 바다건너 송진포왜성과 함께 장목만의 입구를 막기위해 세워졌다.
내륙에 쌓은 왜성보다는 규모가 적으나 봉우리에 누각을 쌓은 성으로 1593년 경 왜장 후쿠시마등 7,430인이 성을 쌓고 주둔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대부분 해전은 거제, 고성, 마산, 진해로 둘러진 안바다에는 일어났다. 장문포왜성 역시 임진왜란의 해전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장문포해전도
장문포 해전의 규모는 조선의 140여 척과 왜군 100여 척으로 충돌하였고, 해전결과 왜군 배 2척이 분멸하였고 조선은 전선 1척, 사후선 3척 피해를 입었다고 전한다.
난중일기에는 1594년 9월 29일에 배를 내어 장문포 앞 바다에 돌입하였으나 왜적이 깊이 숨어 나오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장문포왜성은 임진왜란의 해전에서 반드시 지나가는 길목이었다.
칠천량해전도
칠천량 해전은 원균의 지휘로 1597년 7월12일부터 7월16일 치뤄진 해전이다.
7월12일 한산도 출발 -> 7월 13일 칠천도 -> 7월14일 옥포, 절영도해상, 가덕도, 영등포 -> 7월15일 칠천량 –> 7월16일 새벽 교전시작 -> 7월16일 진해만, 춘원포로 탈출시도 궤멸, 경상우수사 배설 탈주(12척)
칠천량해전은 조선수군 140여 척이 분멸하였고 12척만이 잔존하였으며, 수군 지휘부와 13,000여 장졸이 전사한 해전이다.
이러한 역사이야기 한 두가지 가지지 않은 왜성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잘 정리하고 포장하면 훌륭한 역사 관광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상품으로 만들면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환상을 심어주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더라도 오히려 전쟁의 상흔을 일깨우고 상호 공존번영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관광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장문포 왜성 안 쪽 |
바다 쪽의 성곽 |
서쪽 성벽 |
그러나 안내간판 하나만 있는 이런 상태의 관리로는 그들을 유인할 수 없다. 돈을 좀 들이더라도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복원하여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남해안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며 요트장을 서로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따져보면 요트는 유행이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층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그보다 오히려 환경을 살리고 역사유적지를 복원하여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더 많은 외국인과 내국인을 만족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없는 것 만들 생각하지 말고, 가지지 못한 것 꿈꾸지 말고,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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