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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생각/마을도서관

냇가에 피어난 고마리...

by 구르다 2012. 1. 2.
2012년 새해가 밝았다. 한동안의 휴식에서 탈탈 털고 기지개를 켜야하는 때가 되었다.
자발적 백수 생활 청산을 위해 이력서를 준비하며 외장하드에 담긴 자료들을 들추다 예전에 쓴 글 하나를 발견했다,

꽃들에게 희망을 소식지에 기고한 글이다. 안타깝게도 7년 전의 글임에도 그때 던졌던 고민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이에 잠자는 블로그도 깨울겸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 본다.


 냇가에 피어난 고마리

(사) 지역문화공동체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사무국장 이종은

여느 해 보다 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이 겨울도 다 지났다. 있는 사람들이야 겨울나기가 여름보다 좋다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겨울은 어려운 계절이었을 것이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지역에서 마을도서관 운동을 한지 10년이 되었고, 10년을 지나면서 가장 어려운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어려움은 남아있다.
 “경남정보사회연구소가 무엇을 하는 곳이에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이런 일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한마디로 대답하기란 참 곤란하다. 마음먹고 2시간은 대화를 나누어야 연구소를 이해시킬 수 있었다.

1994년 연구소 첫 출발부터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연구소와 함께 해 오신 몇 분 중의 한 분인 이은진 교수(경남대 사회학과, 연구소 초대 소장)도 연구소 10년을 소회하는 글에서 “연구소의 목표가 항상 뚜렷한 것은 아니었지만, 도서관운동, 마을 공동체 운동, 민간파트너쉽사업, 평생교육 등이 지금까지 연구소 사업의 목표로 내걸은 것이었다.  지금 현재에도 연구소의 목표를 하나의 슬로건으로 담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연구소의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는 비지배(인간사이의 지배관계), 시장의 비인간적 경쟁을 배제하고, 시민간 유대, 사회적 신뢰, 자율과 관용(대화와 타협)을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밝히고 있다.
 
연구소는 첫 출발부터,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택했다. 10년 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마을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사회적인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도서관과 교육을 주제로 시작했다.
또 지금이야 시민단체의 민관협력 사업이 일반화되었지만, 10년 전에는 그러한 것이 생소했고 그러다 보니 관변단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일상의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일을 하다보니 어느 날 돌아 본 연구소는 동네의 잡화상이 되어있었다.

이런 연구소를 꽃에 비유한다면 무슨 꽃에 비유될 수 있을까?
분명 장미가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장미를 받쳐주는 안개꽃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안개꽃으로도 뭔가 부족한 것 같다.
지역에서 스스로 피어난 것이니, 일단은 우리산과 들에 철따라 피는 우리 꽃이 맞을 듯 하다.
우리 꽃 중에서도 이른 봄 깊은 산에 자태를 뽐내며 피기에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디지털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웹상에 수없이 얼굴을 내미는 얼레지류 보다는, 한여름 양지바른 들이나 냇가에 흐드러지게 피는 고마리류가 연구소다.
화려하지도 않고, 만나기 어렵지도 않고, 꺾어 꽃꽂이도 하지 않는 꽃, 무더기로 피어 겨우 그 존재를 알리는 꽃, 그러나 자세히 알고 나면 소중한 꽃이 고마리이다.


고마리는 무더기로 피어 우리들이 내보낸 오염된 물을 정화해준다. 그럼으로써 많은 생명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연구소 역시 마을에서 그러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연구소가 주인공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이웃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연구소가 처음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것은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되어가면서 이웃이 없어지고 서로의 이름에 관심이 없어지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것에서였다. 그래서 이웃을 사귈 수 있는 공간을 찾고, 만들다 보니 마을도서관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창원에서 마을도서관은 보편화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적 생활공간이 되어있으며, 마을도서관을 운영에 참여하는 단체도 지금은 많이 늘어났다. 아무도 관심 없던 일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일이 되었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지만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마을의 중심공간이 된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역시 이웃을 사귀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도서관에서 시작을 했고, 이제는 소외받는 아이들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연구소 10년을 지나면서 연구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 하나,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적합한 대응이었는가? 이것은 연구소 창립의 목적에 관련된 것이다. 즉 사회의 변화에 대한 알맞은 과제를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기위해 단채를 설립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 둘, 창원시 행정은 바뀌었는가? 연구소가 추진한 민관협력에 의한 사업, 특히 마을도서관(사회교육센터) 사업의 세 운영주체(운영단체, 주민, 행정) 중에서 행정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 셋, 우리 조직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유연하고, 견고한가? 사회는 쉼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변화를 이끌어 가는 운동주체로서 우리는 어떤가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 넷,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책임감이 있고, 참여적이고, 숙고하면서 일을 하는가? 마지막 질문은 연구소의 마을공동체운동을 직접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실무진과, 연구소 이사, 마을도서관에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역할과 책임에 대한 질문이다.

연구소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에서 생동하는 운동조직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연구소는 10년 동안 만들어 온 성과를 지키는 일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축구경기를 보면서 한 점 넣고 지키는 경기의 어려움과 답답함을 선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경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많이 느낀다.
연구소의 운동은 선수들의 경기가 아닌, 참여자들의 경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연구소의 성과를 어떻게 나누고, 주민들과 이용자들이 경기에 더 신명나게 참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연구소는 생활하수가 흐르는 개울가에 흰색, 담홍색으로 군락을 이루며 피어나, 그 역할을 묵묵히 하는 고마리가 될 것이다.
산에 피어난 고마리는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약수터나 물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을 산행 길에 아름답게 피어난 고마리꽃을 만나면 혹시 주위에 생명의 맑은 물 약수터가 있지 않나 한번 둘러보세요.

2005.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