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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생명가득한

봄날, 20년 마당 벚나무와 이별을 아쉬워하며..

by 구르다 2010. 4. 3.
언제부턴가 사무실 마당에 벚나무를 보며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봄 깊어 가는 속도가 무척 느립니다.
작년 이맘때는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작년과 비교하면 2주 정도 늦습니다.


숲, 마르지 않아

우무석 시/고승하 곡/김현수 노래/경남정보사호연구소 2005

며칠 비가 내려 쌀쌀했는데도 화요일부터 꽃잎을 열기 시작하더니 비 그치고 해가나니 금요일엔  제법 많이 피었습니다.

△ 2010.4.2.9:42, 창원 봉곡동



사무실 마당에는 자리를 지킨 지 20년이 넘은 벚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매년 벚꽃이 놀이터를 가득 덮고 벌이 윙윙거리면 아 봄이 깊어 가는구나!
그리고 아이들이 그네를 탈때 눈처럼 벚꽃잎이 날리면 봄이 여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꽃잎이 사라지고, 벚나무가 초록으로 물들고 빨간 버찌가 매달리면 여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버찌가 까맣게 익어 떨어지고, 직박구리가 빽빽 거리면 여름의 절정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땅속에서 나온 매미가 벚나무로 기어 올라 울기 시작하면 여름의 절정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면 여름의 막바지 입니다.





어느 순간 벚나무 잎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면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고,
잎이 바람에 떨어지고 앞집 아저씨가 가끔 마당을 쓸면 진짜 가을입니다.



벚나무가 잎을 떨구고 벌거숭이가 되어 가는 것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고,
어느 날 마지막 잎이 안간힘을 쓰다 떨어지면  겨울입니다.





사무실에 앉아 벚나무만 봐도 계절의 시작과 끝을 압니다. 계절은 시작과 끝이 없으니 그냥 계절의 이어짐을 느낀다고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었던 마당 벚나무에 대한 추억이 올해로 끝날 것 같습니다.




우리 단체가 사용하는 건물은 마을복지회관입니다. 20여 년 전 창원인 고향인 분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고, 마을 가운데 이주민복지회관으로 지은 것입니다.
15년 전 우리 단체에서 이런 공간에 마을도서관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그것을 창원시가 받아들여 지금은 이런 건물에는 마을도서관이 모두 생겼습니다.
 
봉곡복지회관 1층은 노인정과 우리 단체가 사용합니다. 2층은 봉곡사회교육센터(마을도서관) 입니다.
올해 15년 된 마을도서관을 고치면서 건물 전체를 재구성합니다.


△ 사무실 제 자리에서 보면 이렇게 벚나무가 보입니다.



1층에 있는 노인정은 지금 놀이터 자리에 신축하고, 우리 단체는 2층 강의실 공간으로 옮깁니다.
2층의 마을도서관(사회교육센터)은 1층으로 옮겨 주민들이 이용하기 쉽게 할 계획입니다.
사실 그동안 노인정이 1층에 있고 도서관이 2층이라 도서관 이용자와 노인정 어르신들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공간을 재배치하면 그동안 불편했던 것은 상당히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20여 년 벚나무가 자리 지킨  마당놀이터에 노인정을 신축하려니, 벚나무를 옮기거나 베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공사를 하는 건축업자 입장은 베는 것이 건물을 짓는데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벚나무가 그 자리에 20여 년 자리를 지켰으니 함부로 베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마당놀이터에 노인정을 신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도서관 이용자들은 당장 '벚나무는 어떻게 하는데?'라고 물었습니다. 결혼 초에 힘들 때 아이를 보듬고 벚나무 아래 그네에 앉아 많이 울었다는 분도 있고, 이미 벚나무에 대한 다양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민센터 담당 주사에게 벚나무를 베기보다는 도서관 옆 공원으로 옮기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 가능하면 도로 쪽 벚나무는 가지치기하더라도 지금 자리에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주었습니다.
어제 주민센터에서 노인정 신축설명회를 했으니 곧 공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도서관과 주민들은 벚나무와 마지막 추억 만들기  마을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으니 올해는 마당 벚꽃을 싫증 나도록 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