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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로/길걷기

봄은 제발로 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by 구르다 2010. 4. 1.
사흘이 멀다 하고 비가 옵니다.
적당히 오면 반가운 손님인데, 너무 자주 내리니 반기는 이도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은 날이 참 좋았습니다.
길을 걸었습니다. 혼자 걷는 길이 아닌 동행이었습니다.
한두 시간이 아니라 종일 걸었습니다.

걸으며 든 생각이 '봄은 제발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맞으러 가야 한다.' 였습니다.
자 어떻게 봄이 왔는지 봄맞이 떠나 볼까요.

안 개 비
이영숙 시/임병재 곡.노래/제작 경남정보사회연구소 2005



중리역과 산인역을 잇는 산인의 신당고개 아래 철길입니다.
노랗게 개나리를 몰고 봄이 왔습니다.
저 철길 따라 걸으면 용담마을이 나옵니다.



이리현 아래 들판에는 봄맞이로 분주합니다.
겨우내 잠자던 땅에 봄기운을 불어 넣습니다.
땅이 봄 기지개를 합니다.



보리밭은 완연한 초록빛입니다.
보리밭 뒤편으로 600년 세월을 간직한 고려동이 보입니다.



고려동 문암마을을 지나, 할미당고개로 접어 들기 전에 세분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들은 봄을 캐서, 바구니에 담고 있습니다.
마을 할머니가 아닙니다. 봄을 캐러 어디서 온 분들입니다.
우리 일행에게 산인못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미당고개를 넘어 입곡마을에 닿았습니다.
부부가 역시 봄을 캐서 비닐봉지에 담고 있습니다.
저렇게 봉지에 담은 봄을 집으로 가져가 가족과 나눌 것입니다.
그럼 가족 모두가 훈훈한 봄기운을 맞을 것입니다.



입곡마을의 벽화입니다.
마늘밭에는 봄이 왔습니다.
담장의 나비가 봄을 맞아 훨훨 나는 것 같습니다.



입곡선돌이 있는 논두렁입니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고새를 못 참고 봄을 캡니다.
이분은 벌써 여러 번 봄을 캐서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봄 쑥에 대한 각별한 사연을 가졌는데
집에 가서 따로 손질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주 깔끔하게 쑥을 캡니다.



죽현(대밭)고개를 오르다 만난 우리 토종 민들레입니다.
노란색 민들레는 꽃받침을 확인해야 토종인지, 외래종인지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대바라져 꽃받침이 젖혀 있으면 외래종, 참하게 붙어 있으면 토종입니다.
흰민들레는 전부 토종입니다.



죽현고개 아래 논둑에도 부부가 봄을 캐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비닐봉지가 아니라 시장바구니를 준비했습니다.
봄맞이 작정을 하고 오신 분들입니다.
아마 봄을 많이 담아갔을 것입니다.



도림마을 들머리에서 만난 매화입니다.
눈으로 꽃을 감상하고, 코끝으로 봄향기를 맡았습니다.
매화향이 진했습니다.
주인 몰래 슬쩍한 매화봉오리는 매화차가 되었습니다.



도림마을 어느 집의 고양이
세탁기 위에서 꼬박꼬박 졸다 우리 일행이 지나니 고개 들어 쳐다봅니다.
잠이 들깬 것인지 귀찮은 것인지 고개만 까딱하고 맙니다.



농촌에는 빈집이 많이 늘었습니다.
얼마나 빈집으로 있었을까?
오랫동안 열지 않았을 문밖은 광대나물과 봄까치가 차지하였습니다.
주인이 돌보지 않는 집을 이렇게 지켜주는 것이 어찌 보면 기특하기도 합니다.



파란 하늘, 파란 지붕, 흙담이
잘 어울리는 집입니다.



그렇게 봄을 만끽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이수정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수정의 수양버들 끝에는 봄이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한가롭게 이수정에 앉아 봄을 낚는 강태공이 참 부러웠습니다.



이수정 아래 물가에도
봄까치가 물에 얼굴을 비춥니다.
고 녀석들 자리 하나는 잘 잡았습니다.



파수의 매화밭입니다.
매화나무 한 그루에 꽃 핀 것만 봐도 와 하는 사람들이
무리로 핀 매화꽃을 보고 봄에 환장을 합니다.



파수 매화가 도시에서 만나는 매화보다 확실히 화사합니다.
꽃이 화사한 것을 보면, 사람이 숨 쉬는 것도 도시보다 이곳이 나을 듯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숨 막히는 도시로 꾸역꾸역 모여들까요?



8시간의 봄맞이를 끝내고 돌아가며
뉘엿뉘엿 넘어가는 봄햇살에 흔들리는 현호색입니다.
도로 옆 허리높이 언덕에 지천으로 하늘거렸습니다.



하하..
봄을 담는 찍사입니다.



콘크리트 회색도시에 갇혀 있으면 봄을 만날 수 없습니다.
간혹 눈을 크게 뜨면 콘크리트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나오는 봄을 만나기도 하고
도로변 가로수에서 봄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봄 색깔은 화사하지 않고 칙칙합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봄을 맞으러 가세요.
기다리다간 봄이 오는 듯하다, 여름 녀석이 불쑥 나타날 것입니다.
봄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
콘크리트 회색 도시만 벗어나면 봄은 지천에 널려있으니까요..

※ 동행 : 근주역(마산 석전)에서 파수역(함안)까지, 20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