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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생각/삶! 때론 낯선

추억을 선물하는 1월의 산타클로스

by 구르다 2010. 1. 12.
추억은 고향 같은 것입니다.
현실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따뜻함 이기에 가끔 추억을 끄집어 내면 푸근함을 느낍니다. 마치 흑백사진이 든 앨범을 들추어 보며 미소 짓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앨범을 들추지 않더라도 코끝을 만지면 어릴적 추억이 떠오릅니다. 한겨울 냇가에서 놀고 얼음을 물고 집에 가다 넘어져 강가에 낮으로 자른 버들강아지에 코끝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피를 뚝뚝 흘리며 많이도 울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창원천에는 썰매타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몇 해째 이어오는 행사입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썰매타기는 겨울철에 제일 신나는 놀이였습니다.
얼음이 언 논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다 물에 빠지면 매거지를 잡았다 했습니다.
짚단에 불을 피워 양말을 말리는데 왜 그렇게 양말에 구멍이 잘 나는지, 아마 나일론 양말이라 그랬을 겁니다.
그럼 집에 가서 양말 태워 먹었다고 한소리 듣고, 구멍난 양말은 다른 천으로 덧대어 기워 신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양말은 알록달록한 패선 양말이 되었습니다.


▲ 창원천 썰매타기 행사에서 아이들이 썰매경주를 하고 있다. 2010년 1월 10일(일) 창원천



그렇게 많이 홍보하지 않아도 하는 날조차 들쭉날쭉한 창원천 썰매타기 행사에 아이 손을 잡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아마 저와 같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아이의 썰매를 끌어주고, 썰매를 타기도 하고 그렇게 아버지의 추억을 아이에게 들려주는 시간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 2010년 창원천 썰매타기 행사를 준비한 반딧불이회 회원들



이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 역시 그런 추억을 가진 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분들을 '추억을 선물하는 1월의 산타클로스'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창원천 썰매타기 행사에는 거창한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광장에 얼음을 얼려 생쇼를 하는 것처럼 요란하지 않습니다.
물을 막아 추워져 얼음이 얼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그리고 추억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면 끝입니다.
아주 많은 돈이 들지도 않습니다. 행사 전체에 2백여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 것으로 압니다.
아마 행정에서 이런 일을 준비하고 진행했다면 얼마가 들어갔을까요? 이 돈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한 사람들이 이렇게 신나게 추억을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원천을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공사를 하다, 지난여름 비로 공사현장이 엉망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공사가 중단되어 있습니다. 공사와 가뭄으로 물이 부족하여 올해 썰매타기 행사는 장소도 좀 더 상류 쪽으로 옮겼습니다.


▲ 2010년 창원천 썰매타기 행사는 생태하천 공사가 중단된 창원천 상류에서 열렸다.



내년에는 아마 다시 창원천 공사를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공사를 하면서 전문가들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창원천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생태하천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겨울에 아이들이 썰매를 탈 수 있는 조건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도 '추억을 선물하는 1월의 산타클로스'를 기다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