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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7번국도동해일주

나를 버리기위해 동해 바다로 간다

by 구르다 2009. 5. 23.

7번국도를 타고 2박4일의 동해일주 라이딩을 하였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혼자서 청승맞게 왜 7번 국도를 따라 라이딩을 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답변은 그냥요?"이다. 특별히 만날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많은 사전 준비를 통해 돌아 볼 것을 정해 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간 것이 맞다.

근데 정말 왜 그 미친짓(어떤 사람은 멋지다고 하더라)을 했을까?
돌아와 생각해보니 '나를 버리기 위한 여행'이었다.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면서 사용한 닉네임이 bada79(바다친구)였다.
별빛이 내리면 고요한 호수 같은 남해의 바다를 좋아했고, 민장대를 들고 바다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미세한 입질을 감지하는 밤낚시를 즐겼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럭저럭 그렇게 바다를 즐기며 산것이 15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한동안 친구같은 바다를 가지 않았다. 그리고 바다 밤낚시도 가지 않는다. 닉네임도 이제 바다친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고요한 호수같은 바다를 보며 잔잔한 물결소리를 들으며 머를 속을 비워야만 새롭게 한 주를 살아 갈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습관처럼 밤바다 가던 것을 중단하였다. 바다에 가지 않은 시간만큼 내 안에 많은 것이 쌓였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남해바다가 아닌 동해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 같고, 영원히 가지 못할 것 같아...
모든 것을 팽겨치고 떠나자라고 마음을 굳혔다.

▲ 출발전 계기판/2009.5.14▲ 프리윙125 출발전 사무실 마당



이번 여행은 특별한 준비없이 떠났다. 네비게이션 기능이 있는 미니노트북을 준비했지만 네비게이션에게 한번도 길을 물어보지 않았다. 지난 수첩에서 지도 한 장을 뜯어 갔지만 어디쯤 왔나 확인하려고 몇 번 보았을 뿐 지도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7번국도를 앞서 여행한 사람이 올려놓은 구간별 지도를 프린트 했지만 그것도 잘 보지 않았다.
이번 라이딩은 안내표지판과 마음 내키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는 자유여행이었다.

▲ 달리다 보니 얼음골이다. /14일 13시10분▲ 저기 골짜기가 얼음골이다.



어디서 부터 동해 바다를 끼고 라이딩 할까 고민은 했었다,
부산 기장에서 할까 아니면 울산..경주..
'그래 경주 감포 바다에서 시작하자' 생각하고 밀양으로 향했다.
사무실 마당에서 출발하여 1시간 30분 정도 달렸다. 호흡하는 공기가 바뀌고 얼음골이 나온다.
얼음골은 입구까지만 갔다 곧바로 돌아 나왔다.


▲ 밀양과 울산의 경계다, 14일 13:45


20여 분 달리니 울산광역시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꽤 긴 터널을 달렸다. 평일의 오후 혼자서 터널을 독차지 했다.
터널을 지나 달리다 경주라는 안내판을 보고 방향을 바꾸어 산으로 난 도로를 탔다.
황량한 도심 도로를 타는 것보다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도로를 따라 라이딩하는 것이 좋아서였다.

▲ 울산시와 경북 경계/14일 14:37▲ 경상북도임을 알리는 표지석



조금 무거운 소리를 내며 구불 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내리막 길이 시작된다.
눈 앞에 경상북도 안내판이 나타난다.

경계라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길은 다 이어지는 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든다...
이때 부터 초행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구비 구비 이어지는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라이딩을 즐겼다.
저수지도 나오고, 논과 밭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게 한시간 정도 달렸다. 눈 앞에 태종무열왕릉 표지판이 보이고 관광차와 학생들, 왼쪽에는 거대한 왕릉이 보인다.
경주에 도착한 것이다.

몇 사람에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경주 도착했음을 알렸다.

▲ 거북이의 앞발 발가락은 5개▲ 거북이의 뒷발 발가락은 4개▲ 거북이 머리가 맞는 것 같다.



얼마전 블로거 천부인권님에게 용생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용과 황용이 교미를 하여 아홉이나 되는 아들을 두게 되는데 그 자식들은 용이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 각자의 쓰임새가 있어 우리 생활 속에 숨어 있다고 하였다.
그 자식 중 첫째가 비희(贔屓)인데 비희는 힘을 쓰는 큰 거북임으로 석비 아래에 둔다고 하였다.
그래서 무열왕릉비를 나름 자세히 사진을 찍었는데..아무래도 용의 새끼가 아닌 거북 같다.

용생구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무열왕릉을 나와 석굴암으로 달렸다. 경주 여기 저기 둘러보면 좋겠지만 이번 여행이 경주만을 보는 것이 아닌지라 지체하지 않았다.
석굴암으로 오르는 산길도 라이딩하게에는 좋았다.

▲ 석굴암에서 14일 15:42▲ 석굴암 내부 사진촬영 금지 ▲ 경주 시내



주차장에 스쿠터를 주차하고 동해 바다를 내려 보았다. 잠시 후 달려가야 할 곳이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참 많이 왔다, 주로 초등학생들이다.
석굴암 가는 길에도, 석굴암에도, 돌아서 나오는 길에도 학생들로 가득하다,

외국인도 가끔 보였는데 학생들이 때거리로 여행하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 감은사지/ 14일 16:43


감은사지는 두어 번 가보았기에 따로 찾지 않았다. 도로에 스쿠터를 잠시 세우고 사진만 담았다.
기억이 맞다면 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태극문양이 있는 것으로 안다.

감은사지를 벗어나 얼마가지 않으면 동해다. 감포를 갈까 잠시 망설이다. 곧장 위로 방향을 돌렸다.

청자켓 앞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에 진동이 인다..
너른 공터가 있는 곳에 스쿠터를 주차하고 헬멧을 벗었다.
바다 냄새가 친근하면서도 약간 흥분하게 한다.

폰으로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날렸다.
'염장 지르지 말라'는 답문이 날아 온다..그래도 난 좋은데..


몇 군데 들리기는 했지만 창원을 출발하고 5시간이 걸렸다.
이제 부터 7번 국도를 타는 동해일주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해의 밤바다가 고요한 호수라면 동해 바다는 하늘의 변화무쌍함을 그대로 가진 또 하나의 하늘 이랄까..
이번 여행에서 동해 바다를 원없이 탐하고 이 바다에 그동안 비우던 머리가 아닌 마음까지 버리고 갈 것이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 모든 것을 받아 안을 수 있기에 바다이지 않은가..